안전한 대학 조성과 대학 공공성을 위한 입법활동 촉구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돌입 기자회견문
대학원생의 80%가 스스로 학생노동자 또는 노동자라 인식, 하지만 제도와 법은 여전히 제자리
인분교수 사건 이후 대학원생 인권 문제가 사회에 알려진 지 약 5년이 흘렀다. 하지만 대학 내에서 학업과 함께 여러 종류의 일을 병행하는 대학원생들은 여전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며 권리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러나 법제도의 방치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들의 자기정체성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2019년 형사정책연구원의 <대학 내 폭력 및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80.8%의 대학원생이 스스로 ‘학생노동자 또는 노동자’라고 인식하고 있다. 현실 법제도가 시민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대학원생들은 오늘 국회 앞에 농성장을 펼친다. 이는 지난 9월 전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결정한 사항이다.
대학원생의 노동을 외면해서 생기는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작년 말 경북대 화학과 실험실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를 들 수 있다. 전신 80% 3도 중증화상으로 피해 학생은 아직까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하고 있다.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였던 피해 학생에게는 산재보험 가입의 기회조차 적용되지 않았다. 여전히 피해 학생과 가족들은 치료비 지급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는 대학과 대학원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주기를 우리는 요구한다. 가십성 인권침해 사례를 조명하여 나쁜 교수 몇 명을 도려내는 것만으로 대학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학교육과 연구개발에 투입되는 모든 구성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여 부당한 침해에 맞설 수 있도록 해야만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국회는 실험실 안전 강화 및 정부・민간과제 참여 학생연구원의 산재 적용, 권력형 성폭력 근절을 위한 각종 대책 등을 입법화하여 구성원들의 기초적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 내에서 일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노동기본권을 법제화하여 권리와 의무를 명시함과 동시에, 대학에 투여하는 공적재원을 확대하여 처우 개선 및 교육・연구환경 개선, 수업료 감면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입법을 요구하기 위해, 안전한 대학 그리고 사회에 공적 책무를 다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국회 앞에 오늘 농성장을 차린다.
첫째, 실험실 안전을 강화하고 학생연구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라!
대학은 우리 사회 일반에 활용될 공적 자산인 지식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대학은 1년에 약 5조원의 세금이 투입되어 국가연구개발의 1/4정로를 수행한다. 여기에 덧붙여 기업으로부터도 수조원에 해당되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대학원생은 연구원으로서 과제를 따내기 위한 제안서를 쓰고, 과제를 수주하면 연구를 수행하는 노동자이다. 과제에 참여하는 연구원들의 노동은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IT산업단지의 불이 꺼지지 않아 한때 오징어잡이배로 불리듯이, 대학 연구실에서의 불도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고 있다.
많은 산업현장에 위험이 존재하는 것처럼, 많은 대학원생들이 위험물질을 다루는 연구실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산재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 산업현장에서의 위험과 우리의 위험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계, 전자제품, 화학약품, 의약품 등에 관련된 연구와 응용기술에 활용되는 기초연구 역시 다양한 위험을 잠재적으로 안고 수행되는 연구이다.
「2019년 연구실 안전관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전국 연구실 사고의 81.3%가 대학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대학은 전체 연구기관의 8%에 불과하다. 8%의 기관에서 발생한 80%의 사고, 이는 대학 연구실이 얼마나 안전에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험실 안전을 강화하고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학생연구원들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라!
둘째,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대학을 위한 입법을 요구한다!
최근 수년간 미투 운동에 의해 대학에서의 성폭력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학 현장에서는 A교수, B교수, C교수처럼 알파벳으로 불리는 여러 성폭력 가해자 교원을 상대로 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신고 접수 후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분리, 조사 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와 학교의 개혁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교수와 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권력형 성폭력은 대학 내 교수의 권위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대학 자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입법을 통한 제도적 규제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학 내 성폭력의 심각성은 최근의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박찬대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교육분야 성희롱 성폭력 온라인 신고센터 개설 이후 신고접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3월부터 2020년 9월 9일까지 330여건 중 절반이 교원이 학생을 상대로 벌인 경우였으며, 전체 중 150건이 대학에서 발생했다. 정청래 의원실이 받은 ‘최근 3년간 국립대 성폭력 신고자-가해자 현황’에서는 학생-교수간 성폭력 피해 신고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어떤 구성원이든 성폭력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것은 기초적인 안전이자 사회적 신뢰의 토대다. 기존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해야 하는 대학에서 여전히 권위주의와 가부장적 질서가 남아있는 대학원은 학술 발전에 있어서도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 성폭력 근절을 위한 법안들을 제정하라!
셋째, 대학원생 4대 직군인 조교, 학생연구원, 학회 간사, 강사의 온전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대학원생이 대학에서 일하는 종류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교육·연구·행정에 종사하는 조교. 둘째, 국가와 기업에서 수주하여 수행하는 연구개발과제를 수행하는 학생연구원. 셋째, 학회 운영의 실무를 수행하는 학회 간사. 넷째, 대학에서 강의하는 강사이다. 대학원생이 비록 학생의 신분이지만 이 네 가지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노동권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이런 업무들은 대학원생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업무를 시킬 경우 논란의 여지없이 노동자로서 대우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대학원생에게 그냥 일을 시키면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우리의 대학과 연구현장은 곪아 들어갔다.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농담은 대학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들의 권리가 보장될 때, 대학원의 음지에 있던 많은 폐단이 바로잡힐 수 있다. 대안은 선명하다, 대학원생 4대 직군의 노동권을 인정하고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입법하라!
넷째,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라!
대학원의 문제가 이렇게 산적해있으면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학교육정책을 안정적으로 수립할 재정적 기초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80% 이상이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학인 상황에서 코로나-19를 맞이하자 등록금 반환을 두고 벌이는 싸움터가 되는 것이 현재 대학의 현실이다.
대학 등록금이 동결된 이후에는 대부분의 대학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발주하는 연구과제를 끌어옴으로서 대학 규모를 키워왔다. 교육부와 과기부 사이에 끼어서 대학원과 연구현장은 중장기적 정책 일관성이나 통일성이 없었고 많은 부작용을 만들었다.
2020년 고교 졸업자 수가 40만 명대로 감소한다.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는 더욱 더 지탱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대안을 찾는 대학의 역할 역시 커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연구와 교육의 중요성이 결코 작지 않음을 의미한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통해 국가예산이 고등교육에 안정적으로 투입되고 일관된 정책방향을 수립할 기초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대학의 쇄신이 동반되어야 한다. 안전한 대학을 만드는 일, 연구윤리를 확립하고 대학 구성원들의 권리가 골고루 인정받는 일은 대학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적재원이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고등교육은 대학의 공공성보다 자율성이 우선되고 대학 구성원의 권리보다 대학 경영자의 권리가 우선되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의 표본이었다. 이번 농성은 단말마의 비명이 아니라 오랜 기간 숨죽여 참아왔던 대학원생의 누적된 분노의 표출이며, 하반기 국회에서 반드시 해당 법안들이 다루어지고 통과되기를 바라는 의지의 발화이다. 국회는 대학원생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 열악한 구조 속에 방치되어 있는 대학원생 존재가 국회에 각인되고 우리의 목소리가 입법으로 외화될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국회는 학생조교의 법적지위를 명시하도록 “고등교육법”을 개정하라!
둘째, 국회는 국가연구개발과제 참여하는 연구원의 근로계약 의무화를 명시하도록 “R&D혁신법” 개정하라!
셋째, 국회는 국가연구개발과제 참여하는 연구원의 산재보험 적용을 명시하도록 “산재보험법” 개정하라!
넷째, 국회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근절을 위해 고등교육법 등 각종 관계법을 개정하라!
다섯째, 국회는 교육비 부담 완화, 연구환경 개선, 대학 구성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