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에서의 청소·경비노동자 고소·고발을 규탄한다!
연세대는 무책임한 행보를 멈추고 원청으로서 책임을 다해라!
“진짜 사장”인 대학들은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협상에 임해라!
우리는 작년 6월 26일 서울대학교 기숙사에서 근무해온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을 알고 있다. 2019년 8월 9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교 제2공학관 직원 휴게실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숨진 이후 고작 2년 만의 일이었다. 우리는 노동자의 안전 및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을 실시하고 위력을 이용해 청소노동자들에게 심각한 모멸감을 불러일으킨 서울대의 악질적인 직장 내 괴롭힘의 진상을 알고 있다.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이었던 구민교 행정대학원 교수를 비롯, 다수의 서울대 교수들은 학교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의 요청에도 되려 ‘명예’와 ‘정치적 악용’을 들먹이며 서울대 기숙사 배기탁 안전관리팀장을 감싸고 돌았다. 우리는 궤변으로 똘똘 뭉친 이 황당한 적반하장의 끝을 알고 있다. 총학생회 등이 강도 높게 규탄했음에도, 심지어 고용노동부가 2021년 7월 30일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치른 필기시험과 복장의 점검 및 품평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한다고 발표했음에도, 서울대는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는커녕 청소노동자들의 주말 근무를 외주화로 전환하였고, 모두의 관심이 식은 틈을 타 사건의 근원이었던 안전관리팀장에게 ‘경고’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시켰다.
서울대의 “마치 중세 봉건제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구조(최서윤·이영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기억하며-고용구조의 사각지대를 걷어내기 위한 연대의 필요성-」,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09.19.)도 한몫했겠지만, 제도의 사각지대 속에서 고용 불안정을 겪으며 겨우 몇백 원의 임금 인상과 최소한의 안전한 일터 마련을 위해 확성기를 들고 뛰쳐나와야 하는 청소노동자의 신세는 주지하듯 서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의 투쟁은 곧 학생들의 것이 되어야만 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우리가 청결한 환경에서 학업과 연구를 수행하고 또 학내를 활보할 수 있는 건 무엇 덕분인가? 청소노동자의 희생과 불공정에 우리들의 학교는 토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와 상호부조의 관계에 있는지, 또 우리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싸워야 하는지 또한 명확해지지 않는가? 해서 연세대학교 학생 3명이 최근 학내에서 시위 중인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상대로 형사고소에 이어 손해배상소송까지 제기한 사건은 기가 찰 일이다. 당당하게 얼굴과 실명을 내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이동수 학생이 외치는 “‘학습권’의 침해”는 그 지적의 향방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트라우마’라는 단어의 오용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공공성이나 공통성의 지반은 없고 오로지 ‘나’와의 동일시만을 요청하는, 그리하여 ‘나’의 방해 요소를 ‘거부’하기만 하면 손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들의 헛된 믿음은 필연적으로 자멸(自滅)할 믿음이다. 왜곡된 우월의식에 근거한 손가락질을 정의로운 권리 행사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믿음이란, 실천 없는 자아도취의 믿음이다. 화제가 된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나임윤경 교수의 강의계획서 일부를 인용해본다. “연세대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지 청소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학교가 아니라 지금까지 불공정한 처우를 감내해 온 노동자들을 향해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들의 ‘공정감각’이 무엇을 위한 어떤 감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싸워야 할 대상을 모른 채, ‘을들의 싸움’을 부추기는 이들의 행보는 정작 학교가 져야 할 마땅한 책임을 은폐한다. 지적과 규탄이 필요함에도 우리가 더 이상 이들의 한심한 고함 지르기에 관심을 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삐뚤어진 ‘공정감각’으로 혐오를 양산하는 소수의 목소리에 더는 먹이를 주지 말아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의 결말이 시사하듯이, 또 하나의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바로 무책임으로 일관하여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거라는, “진짜 사장”인 학교들의 방만한 믿음이다. 학생과 노동자의 균열은 학교가 손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서울대든, 연세대든, 고려대든, 그 외 어떤 학교든,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는 학교이며, 하청업체 역시 학교가 지급한 계약금의 한도 내에서 임금을 지불할 수 있으므로 원청이 청소·경비·주차 등 학내 노동자의 임금 인상과 노동 환경 개선을 책임지고 이행해야 함은 자명하다.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는 결정권자인 학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연세대학교는 이번 고소·고발 건을 두고 “학교와 노조와의 문제가 아니라 용역 업체와 노조와의 임금 협상 문제”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장나래, 「청소노동자에 쏟아진 연대…정작 연세대는 “대학도 피해자”」, 《한겨례》, 2022.07.01.). 고소·고발을 진행한 학생들의 목소리를 받아쓰기하는 수준의 파렴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원청인 학교가 엄연히 책임져야 할 문제를 방관하는 연세대학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 분회장 김현옥 씨의 말처럼 전략적으로 “처우 개선 요구를 묵살”함으로써 사태를 무마하려는 듯하다. 그렇게 쉽게 문제를 덮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연세대분회는 이번 시위에서 ‘시급 440원 인상’,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했다. 7월 6일부터 본관 1층에서 연좌농성과 철야농성에 돌입한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들은 13개 대학·빌딩 사업장과 함께 ‘생활임금 쟁취’, ‘구조조정 반대’, ‘샤워 시설 확충’을 외치며 투쟁하고 있다. 폭염 속에서 최소한 인간답게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달라는 평균 연령 60세 청소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도 학교들은 어째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는 묻는다.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 그들의 임금을, 근로환경을 왜 학교가 직접 책임지지 않느냐고” 말이다. 연세대에서는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3,000여 명이 넘는 학생과 졸업생, 시민들이 연서명에 참여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연대의 ‘마음’을 넘어 실천으로 나아가는 노학연대를 구축하여 연대 전선을 넓혀야 한다. 학부, 대학원, 시설·경비 노동자, 강사, 교수 등 각각의 단위와의 연대 체계를 구축하여 세력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학교의 다른 구성원을 밀어낼 때 우리의 입지가 어떻게 좁아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학내에서 어떤 복수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또 가질 수 있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함께 분노하고 또 함께 행동해야 한다.
쥐죽은 듯 지나가는 시위와 파업과 투쟁은 없다. 시위나 파업의 본질은 특정 집단에 부당하게 집중되어있는 불편함을 전체와 공유하면서, 불편함을 생산해내는 조건을 시정하도록 압박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시끄럽게’ 하여 비당사자들이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의 이면을 알게 하는 것이야말로 청소노동자 시위와 집회의 목적이다. 학교를 더욱 시끌벅적하게 만들어보자! 학교가 더는 시간을 끌 수 없게 하자! 노동권과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연대와 투쟁으로 나아가자! 우리 분회는 연세대 사태가 초래한 상황에 경각심을 가지고 연대를 보내며, 고려대에서의 청소노동자 투쟁에 끝까지 함께할 것을 결의한다. 학생과 노동자의 하나됨을 경시한 위선들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투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고려대 분회

